인생과 세계를 표현하는 철학적인 사상 체계는 두 가지 요소에서 생겨난다. 하나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종교 체계와 윤리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과학적' 탐구이다. 두 요소가 각기 다른 철학자의 체게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으나 철학은 두 요소를 다 어느 정도 포함한다.
'철학'은 넓게든 좁게든 여러 방식으로 써온 말이다. 나는 철학이란 말을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하자고 제안하며 이제 그 의미를 설명하려 한다.
내가 말하려는 철학은 신학과 과학의 중간에 위치한다. 철학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지식으로 규정하거나 확정하기 힘든 문제와 씨름하는 사변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그러나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전통을 따르든 계시를 따르든 권위보단 인간의 이성에 호소한다. 명확한 지식은 무엇이든 과학에 속하는 반면 명확한 지식을 초월한 교리는 모두 신학에 속한다. 신학과 과학사이에 자리잡고 양측의 공격에 노출된 채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무인지대가 바로 철학의 세계이다. 사변적인 정신의 소유자가 대체로 흥미를 느낄 만한 질문에 대해 과학은 거의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며 신학자의 확신에 찬 대답도 이전 세기와는 달리 확신을 주지 못하는 듯 하다.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나뉘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신은 무엇이고 물질은 무엇인가? 정신은 물질에 의존하는가 아니면 독립적인 힘을 가지는가? 우주는 통일성 혹은 목적을 가지는가? 우주는 어떤 목표를 향해 서서히 진화하는가? 자연 법칙은 정말 존재하는가 아니면 질서에 대한 선천적인 사랑때문에 자연 법칙을 믿게 되는가? 인간이란 천문학자의 눈에 보이듯 작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행성 위로 무력하게 기어다니는 불순물이 섞인 탄소와 물로 구성된 덩어리에 불과한가? 아니면 햄릿에 나오는 고뇌에 찬 존재인가? 혹은 두가지 면을 모두 가지는가? 고귀한 삶의 방식과 천박한 삶의 방식이 따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모든 삶의 방식이 헛된 것에 불과한가? 만약 고귀한 삶의 방식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루며 우리는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지혜란 존재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실험실을 뒤져봐야 소용없는 노릇이다. 반면 신학은 이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가졌다고 자만했으나 근대인에겐 되려 이 자만이 의혹으로 바뀌게 되었다. 설령 답이 없다고 해도 앞서 열거한 문제들이 철학의 주된 관심사이다. 그럼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그런 허망한 것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냐고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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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와 한 민족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곳에 속한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어느정도 철학자가 되어야한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철학을 만드며, 사람들이 만든 철학이 환경을 만든다.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서양 철학사 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