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9월, 미 육군 36보병사단 143 보병연대 소속의 찰스.E.켈리 상병(Charles E. Kelly)은 이탈리아 알타빌라 마을 인근에 위치한 미군의 탄약고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그는 혼자였고 탄약고를 방어하던 아군 병력은 하나도 없었다. 반대로 독일군은 최소 70여명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공격해왔다.
회색 군복을 입은 독일군들이 마을 광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본 켈리는 헛간에 자리 잡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총열이 녹아 휘어질때까지 사격했다. 그는 독일군 여러명을 사살한 뒤 위치를 이동하였다. 독일군들은 헛간에 총격을 가했으나 켈리가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맞추지 못했다.
켈리는 자신의 총이 과열되자 다른 총으로 바꿔서 다시 싸웠다. 그 총도 과열되서 쓰지 못하자 그는 탄약고에 널려있던 톰슨, 스프링 필드, M1 개런드, M1 카빈등 다양한 소화기들을 사용하여 독일군에게 계속 사격을 가했다. 그러다 탄약고 한켠에 놓인 바주카포를 보고선 훈련받은 기억대로 적들을 향해 발사했다. 후폭풍이 헛간을 휩쓸었지만 켈리는 무사했고 또 여러명의 독일군들이 육편이 되버렸다.
바주카포를 내려놓은 켈리는 60mm 박격포탄들을 발견하고선 안전핀을 뽑은 뒤 신관을 선반에 내리친 다음 손으로 집어던져댔다. 접근 해오던 독일군들은 박격포탄 세례에 머뭇 거렸다. 독일군 저격수가 근처 교회 첨탑에서 그를 제거하려고 조준사격을 가했는데, 켈리는 헛간 밖에 있던 37mm 대전차포로 뛰어가 그 첨탑을 조준하고선 미친듯이 포격을 가해 건물을 무너뜨려버렸다. 결국 견디지 못한 독일군은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하였다. 탄약고를 지켜낸 켈리는 그날밤이 되어서야 부대로 복귀하였다. 그가 사살한 독일군은 최소 40여명으로 추정된다. (나중에는 홍보당국에서 100명, 200명 이상이라고 뻥카 쳐서 더 부풀려짐.)
이후 그의 일화는 육군 신문 스타즈 앤 스트라이프 (Stars and Stripes)를 통해 알려졌고, 켈리 상병은 "코만도 켈리 (Commando Kelly)" 불리우며 1944 년 2월 18일, 의회 명예훈장(메달 오브 아너)를 수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