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인제대 의과대학 졸업 후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수단으로 향합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와 같이
남북이 갈려져 있는 상태였죠
살아 생전 인터뷰 내용이
다큐안에 실려있습니다
Q.수단 톤즈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A. 세상에 정말 이런곳이 있구나
제가 생각했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할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제를 마치고 꼭 다시 톤즈로
돌아오겠다고 결심을 한 신부는
움막 진료소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몰리자
직접 병원 설계부터 시공까지
톤즈 사람들과 함께하였습니다
그가 하는 말중 가장 인상깊었던 말
여기 톤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옆에 있어주는것"
위 장면 또한 마치 동네 형같은
푸근한 이미지를 알수있죠
또한 남수단 톤즈 공동체의
유일한 의사였기때문에
밤에 긴급한 환자 (총상 , 말라리아등)이
끊임없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신경숙 / 가정의학과 전문의)
그녀는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밤에 환자가 왔다고 하면
단 한번도 문을 두번 두들기게
한적이 없으셨어요
힘들만도 한데 전혀 내색없이
진심을 다하는 의사셨어요"
신부님이 이 세상을 떠난 그 후
마을 사람들에게 그의 얘기를 하자
남들 앞에서 우는건 수치로 여기는 딩카 족
여인은 흐느끼며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전기가 없던
톤즈 공통체에는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오는곳이 있었습니다
생전에 신부가 머물린 숙소인데
이유는 백신이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직접 태양열을 공수해와서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문둔병 (한센병) 이라고 불리는 병을
가지고 있는 한센인을 특히 아꼈다는 그
매번 진료를 갈때마다 옷을 주고
기성화는 맞지 않으니
한명 한명을 위한
신발까지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것같다
사랑을 가리치는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는 정이 넘치는
그런 학교 말이다"
또 다른 변화는 마을에 멜로디가
흘러나왔다는 것이죠
학창시절 작사 작곡을 할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던 이태석 신부
그의 저서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에는
브라더 밴드를 만든 배경도 적혀있습니다
"장기간 전쟁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부서졌다 그래서 아이들이 음악을 배운다면
기쁨과 희망을 심을 수 있을것 같았다"
그의 바램대로 정예 멤버들은
꾸준한 연습을 통하여
남수단 정부행사에도 초청될만큼
많은 지지를 받게 됩니다
휴가 차 오랜만에 온 한국에서
지인의 권유로 생애 첫 건강검진을
받게 된 이태석 신부
결과는 충격적이였습니다
암이 온몸에 퍼져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것을 모르고 있었던것이죠
Q.최종적으로 이 이야기를 듣었을때
신부님의 표정은 어떠셨습니까?
A.낙담하시더라구요,
자신의 삶이 마감되서 그런게 아니라
수단에 가서 아직 할 일은 많은데
내가 일을 못하게 되었다
사실 가시려고 했어요
하지만 저랑 가족이 뜯어 말렸죠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은 일주일 후
수단 어린이 후원 음악회를 위해
노래를 하러 간 날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병에 대해
알리지 않았던 그
바로 옆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가
자신의 친동생이였는데도 말이죠
그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곳은
시골에 있는 작은 수도원이였습니다
그곳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헌신과 사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남수단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를 썼던것이죠
항암 치료를 16번이나 받으면서
주변사람에게 힘들다는 말
투정 한마디 없이 떠난 한국의 슈바이처
그의 마지막모습을 보여주기로 한 제작진
눈물을 보이는것을 최대 수치로
여기는 딩카족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릅니다
하 하ㅠ..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