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 육군 소령 (1902~1992)
1950년 6.25 전쟁에 지원방안을 검토하던 벨기에 , 2차세계대전의 후유증때문에 물자지원만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당시 상원의원이자 국방부장관을 역임하던 앙리 소령은 파병 의견을 주도했습니다.
2차세계대전때 벨기에 육군으로 참전해 나치독일의 포로가되어 종전까지 포로 생활을 한 앙리 소령은 누구보다 전쟁의 아픔과 약소국이 겪는 서러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벨기에군, 갈색 베레모는 벨기에군의 상징이다.>
결국 파병을 결의한 벨기에 그리고 앙리 소령은 모범을 보이기 위해 국방부 장관을 사임하고 51세의 나이에 벨기에 대대의 통신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합니다.
당시 벨기에 법은 상원의원은 전쟁에 참전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앙리 소령이 참전할수있도록 법이 개정되기까지 합니다.
<말년의 앙리 모로 드 믈랑>
"벨기에도 한국처럼 열강에 둘러싸인 소국이기때문에 같은 처지의 한국을 도와야했다."
국방부장관직을 사임하고 상원의원의 신분임에도 한국을 위해 참전한 앙리 모로 드 믈랑 소령, 당신의 헌신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