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의 '무적해병' 친필휘호>
도솔산 지구 전투
1951년 6월4일부터 19일까지 미 해병대 1사단에 배속된 국군 해병대 1연대가 북괴군 12사단을 격파하고 도솔산 일대의 고지를 확보한 전투.
도솔산 일대의 고지들은 양구가 훤히 보이고 양구-인제를 잇는 도로를 끼고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북괴군도 이를 알고있어 정예부대인 12사단을 배치하고 진지를 구축하여 저항을 했습니다.
처음엔 미 해병대 1사단 5연대가 공략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없이 사상자만 발생한채 국군 해병대 1연대와 임무교대를 하였습니다.
<도솔산 수복후 전투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위해 충령비를 만드는 해병대>
6월4일 전투 초기에는 몇개의 고지를 점령하는등 선전하였으나 이내 북괴군의 저항에 고전을 하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국군 해병대는 미군이 꺼려하던 야간작전까지 감행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결과 도솔산 일대의 고지들을 점령하는데 성공합니다.
<전투후 격려차 도솔산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미군도 해내지 못한걸 한국 해병대가 해냇다"라고 극찬하며 '무적해병'의 휘호를 내렸습니다. 이 말은 통영상륙작전때의 ' 귀신 잡는 해병대'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해병대를 상징하는 구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야기 1 - 2차세계대전 사이판 전투 미군의 나바호족 통신병들처럼 도솔산 전투의 국군 해병대 통신병들은 제주 사투리를 쓰며 교신했는데 이유는 북괴군이 통신기를 노획해 감청을 시도하자 상부에서 제주도 출신 통신병들에게 사투리로 교신하라 지시한것입니다(이들 대부분이 4.3사건때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입대한 제주 청년들입니다.)
이야기 2 - 해병대 전역한 펨창들은 알텐데 포항 해병대 신병훈련소의 '도솔관'이 도솔산 전투에서 따온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