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1966년 8월 천안문 광장에서 찍힌 사진이야. 왼쪽은 그 유명한 마오쩌둥, 오른쪽은 쑹빈빈이라는 사람이야. 쑹빈빈이 마오쩌둥한테 빨간색 완장을 채워주고 있지? 눈치챘겠지만 저게 그 유명한 홍위병 완장이야.
그럼 쑹빈빈은 누구인데 마오쩌둥 팔에 완장을 채워주고 있는걸까? 그건 쑹빈빈이 입은 옷을 보면 알 수 있어. 저 옷은 인민해방군의 군복이야. 그럼 쑹빈빈은 어떻게(딱 봐도 군대 물도 못마셔봤을것같은데)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을까? 그 이유는 쑹빈빈이 중공 금수저였기 때문이야. 쑹빈빈의 아버지 쑹런충은 인민국 상장이었어. 즉 중국 공산당의 핵심중의 핵심층의 딸이었던 거지.
반대로 마오쩌둥이 입고있는 옷을 보면 다림질도 안 되어 있고, 후줄근하게 생겼어. 옆에 있는 쑹빈빈의 옷이랑 비교가 돼. 그건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이 옷이 마오쩌둥의 옷이 아니기 때문이야. 마오쩌둥은 이 행사 당일날 옆에 있는 호위병의 옷을 벗겨서 그걸 본인이 입고 이 행사에 나타난거야.
너네들도 알겠지만 공산주의 국가에서 하는 대규모 행사들은 모든 절차가 칼같이 딱딱 맞춰서 진행하지. 근데 마오쩌둥은 어쩌다 호위병의 옷을 벗겨서 나타났을까? 바로 이 비밀을 이해하야 문화대혁명을, 더 나아가 천안문 사태와 현재의 중국 공산당을 이해할 수 있어.
너네들 대부분은 문화대혁명이 마오쩌둥이 일으킨 사건이라 생각할거야. 마오쩌둥이 홍위병을 조직하고, 그 홍위병들이 문화대혁명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홍위병, 그리고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시켜서 일어난 일이 아니야. 중국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홍위병을 만들었고, 그들이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거야.
그럼 왜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의 원흉이라고 알려져 있는거냐고? 사실은 이 당시 마오쩌둥은 대약진운동의 처절한 실패로 실권을 잃은 상황이었어. 권력욕에 넘치는 마오쩌둥은 어떻게든 그 권력을 다시 되찾아오고 싶었겠지? 그래서 마오가 자발적으로 일어난 홍위병을 선동하여 일어난 사건이 바로 문화대혁명인거야.
그리고 바로 저 쑹빈빈이 처음으로 베이징에서 학생 시위를 일으킨 사람인거야. 즉 홍위병의 대모쯤 되는 사람인거지. 그럼 왜 쑹빈빈이 들고 일어났을까? 그 당시 베이징에는 쑹빈빈같은 진성 빨갱이 쥬니어만 있는게 아니었어. 장개석이 국공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도망갔을 때, 모든 국민당 지지자, 또는 부동층이 다 같이 도망간건 아니었어. 그리고 중공 역시 나라는 굴려야 하니 이들을 다 숙청할 수는 없었겠지. 그 당시 베이징에도 부르주아들, 즉 친 국민당 성향, 또는 부동층, 기회주의자들이 남아있었겠지. 그리고 베이징이 중공의 수도가 되었으니, 베이징에선 쑹빈빈과 같은 빨갱이 주니어와 부르주아 주니어가 같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상황인거야.
그럼 빨갱이 주니어들은 부르주아 주니어들이 불편할수밖에 없어. 우리 부모님들은 혁명을 완수하고 개선해서 베이징에 오게 되었는데, 저 반동분자들은 뭐길래 지금도 발 뻗고 잘 지내는거지? 그리고 대학갈때쯤 되니까, 저 반동분자들이 더 공부를 잘하는거야. 그래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혁명이 아직 완수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거야. 그래서 아직 미완성인 공산주의 혁명을 끝내기 위해, 그들이 홍위병이 되어 일어난거지.
그 당시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마오쩌둥은 이를 기회로 여겼어. 그래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홍위병 시위를 본인이 다시 권력을 장악할 기회로 본거야. 그래서 저 자리에 급하게 나가, 본인이 실각한 이유는 류사오치 등 당내 "반동분자"들 때문인거고, 본인을 따라 혁명을 완수하라고 선동을 하기 시작한거지.
즉, 문화대혁명은 절대로 마오쩌둥에 의해 위에서부터 시작한 운동이 아니야. 문화대혁명은 아래서부터 시작한 운동이야. 그렇기 때문에 문화대혁명의 상징이 홍위병, 대중 그 자체인 것이지. 마오쩌둥은 단지 그의 권력욕을 위해 이 혁명을 이용했을 뿐이야.
그래서 문화대혁명의 특징은 극단적 대중주의, 극단적 반 엘리트주의, 극단적 반권위주의라고 할 수 있는거야. 그리고 이 당시 문화대혁명의 최대 피해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공내전 승리의 주역들이었던 당 중심층, 그리고 관료였던 거야. 왜냐면 그들은 대중이 아니었고, 엘리트였으며, 권위가 있었기 때문인거지. 그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덩샤오핑이야. 그는 문화대혁명때 반 마오주의자, 자본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고 숙청되었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게 된거지.
그러나 사람의 인생이란 허망한 것. 문화대혁명으로 권력을 얻은 마오쩌둥이 죽게 되고, 피말리는 권력투쟁 끝에 숙청되었던 공산당 엘리트들이 다시 복귀해. 그리고 그들이 머릿속에서 문화대혁명은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아. 그들이 어떻게 만든 중국인데, 그 중국을 우매한 국민들이 다 망쳐버리고, 죽을뻔한 고생 끝에 살아 돌아온거지.(뭐 죽은 사람도 많고) 그래서 그 이후로 공산당의 대중에 대한 기조는 굉장히 강경하게 바뀌어. 그들은 절대 대중들을 신뢰하지 않아. 그리고 대중에게 절대로 힘을 줄 생각도 없는거지. 그렇기에 중국 공산당은 문화대혁명을 겪고 극단적 반대중주의, 극단적 엘리트주의, 극단적 권위주의로 바뀌게 된 거야.
사실 중국 역사를 봐도 대중운동은 언제나 정권에 크나큰 타격을 줬어. 진나라를 멸망시킨 진승-오광의 난,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삼국시대를 열은 황건적, 당나라를 이빨 빠진 호랑이로 만든 황소의 난, 원나라를 몰아낸 홍건적의 난, 명나라를 끝장내고 청나라가 중원에 무혈입성하도록 만든 이자성의 난, 그리고 청나라를 갈기갈기 찢기게 만든 의화단의 난과 태평천국까지. 그리고 막상 중국 공산당 역시 신해혁명과 공산혁명 끝에 집권했고 말이지.
그래서 지금의 중국 공산당 역시 대중운동에 대해 엄청난 강박을 가지고 있고, 대중운동을 언제든 제 2의 문화대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위험으로 인식하는거야. 그렇기에 덩샤오핑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천안문 사태를 탱크로 진압했으며(보시다시피 쑹빈빈과 마오쩌둥이 만난 곳이 천안문 광장이야), 파룬궁을 비밀결사로 의심해서 탄압하는거야. 그리고 지금 홍콩을 어떻게든 진압하려고 하는거지.
즉,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태는 정확히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는 사건인거지.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
마지막으로, 저 쑹빈빈은 빠르게 깨진 대가리를 복구하고, 문회대혁명이 끝나마 미국으로 유학가서 무려 MIT에서 박사를 받고, 쭉 미국에서 교수로 지내. 마치 트위터 좋아하시는 조 모 씨의 딸이 생각나는 대목이지?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는지, 요즘은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본인의 홍위병 시절 과오를 반성하면서 지내더라고. (https://news.joins.com/article/14043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