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시작되면 양편은 강 양편에서 상대편을 향해 돌을 던졌다. 이때 줄팡게를 이용하면 돌을 멀리 날려 보낼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차츰 싸움이 격렬해지고 한쪽이 밀리면 다른 한쪽은 강을 건너 상대편을 추격했다. 추격하다가 서로 마주치면 육박전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깨진 기왓장으로 머리를 내려칠 정도로 격렬했다.”
출처 :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석전(石戰)
단어 그대로 돌+싸움이다
눈뭉치를 던져서 싸우는 눈싸움처럼 눈뭉치 대신 짱돌을 던져 상대편의 뚝배기를 깨는 놀이
말 그대로 짱돌을 상대편에게 던져서 뚝배기를 깨거나 어디하나 뿐질러서 반병신을 만드는게 목적이며 실제로 뒈짖 해버리거나 금치산자가 되버린 사람이 많다고 한다.
주로 마을 vs 마을 , 고을 vs 고을 단위로 배틀을 했으며 두 팀중에서 한 팀이 이기는 쪽으로 분위기를 타버리면 상대편의 마을에 가서 본진을 털어버리는 엘리전 또한 심상치 않게 일어났다고,
후에는 프로스포츠처럼 발달해서 남사당패처럼 왕실의 유흥거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행주대첩의 주무기가 짱돌이었던건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석전은 단순히 백성들의 놀이 문화뿐만이 아니라, 평소 행실이 개좆같던 사람이, 특히 높으신 분이 있다면
그 사람의 집앞으로 가서 항의의 표시로 짱돌을 던지는 일종의 레볼루숑 기능도 겸했다고 한다.
조선인들은 이 석전을 할때 아주 자부심이 강해서 지고 오면 사람취급도 안해줬으며 상처 하나 안나고 돌아오면 쫄보취급을 할 정도.
<달리는 기차에 있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짱돌을 던져서 정확히 뚝배기를 맞추신 믈브급 제구력의 소유자 독립운동가 원태우 의사>
게임을 하면 이기는게 종특이자 미덕인 조선인들의 석전에 대한 애착과 집착은 굉장히 강해서 심지어 석전을 하는 정월대보름 시즌에는 용병까지 고용했다는 소리도 있었다.
프로 석전꾼의 제구력은 MLB의 그것과 비교할 수준이라서 돌로 던지면 못맞추는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일설에 옛날 조선에 웅덩이(龍湯 용탕) 바람이 강하던 시대 京城(경성)에서 남북 양쪽 지역에서 美少年(미소년)을 빼앗아갔다.”
또한 놀랍게도 이긴 동네가 진 동네의 미소년(!)을 빼앗아가는 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대체 데려가서 무엇을...
기록에 따르면 석전은 삼국시대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온 유서깊은 즈언통 문화였으며
이 아름다운 미풍양속은 일제시대때에 이르러서야 일제 치하의 탄압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없어진 이유는 당연하게도 너무 위험해서, 또한 치안 안정을 위해서.
우리도 어릴때 연탄재로 저러고 놀았는데 아랫동네 윗동네. 나중에 육박전에 연탄 덩어리로 내리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