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작고 효율적인 나노 모터 개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나노머신이 작동하려면 동력을 내는 모터가 필요하고, 모터의 크기에 맞춰 나노머신을 더 작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용화가 가능한 나노 모터는 수백 나노미터(㎚) 크기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인류가 만든 가장 작은 모터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현재 기네스 세계 기록은 2011년 터프츠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1㎚ 크기의 실험용 나노 모터가 차지하고 있다. 1㎚는 분자 한 개 크기에 불과해서 나노 모터 연구가 극한까지 도달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번에 더 작은 나노 모터가 개발됐다. 지난 15일 스위스 연구팀은 고작 16개의 원자만으로 구성된 나노 모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발표했다. 새로운 나노 모터는 크기가 1㎚ 미만, 모발 직경의 약 10만 분의 1에 불과해서 기존 세계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터프츠 대학 연구팀이 개발한 1㎚ 크기의 나노 모터.)
터프츠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 모터는 구리 표면에 올린 부틸메틸설파이드 단일 분자에 전기를 흘려 회전시키는 방식이다. 회전자에 해당하는 부틸메틸설파이드 분자의 길이가 1㎚가량일 뿐, 구리 고정자가 필요해서 실용화하려면 더 커져야 한다.
스위스연방재료과학기술연구소(Empa)와 로잔공과대학(EPFL) 연구팀이 최근 개발한 나노 모터는 3층 타워 구조로 되어 있다. 아래쪽에 6개의 팔라듐 원자와 6개의 갈륨 원자가 결합하여 고정자 역할을 하고, 맨 위에는 4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아세틸렌 분자(C2H2)가 붙어서 회전하는 구조다. 비록 연구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회전자로 사용된 아세틸렌 분자의 길이가 1㎚ 미만이라서 터프츠 연구팀의 모터보다 작다고 볼 수 있다.
(16개의 원자가 결합한 나노 모터. 고정자는 각각 6개의 팔라듐(파란색)과 갈륨(빨간색) 원자, 회전자는 4개의 원자를 가진 아세틸렌(회색) 분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 세계에서 한 방향으로만 돌기 어려워
나노 모터는 일반 모터와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회전자와 움직이지 않는 고정자로 구성된다. 이러한 모터를 실제로 유용하게 사용하려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거시 세계에서는 한쪽으로만 회전하는 ‘래칫(ratchet)’ 톱니바퀴 원리를 사용하여 회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분자 크기의 모터에 래칫 원리를 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팀은 팔라듐과 갈륨 원자로 구성된 고정자의 구조가 회전 방향으로는 대칭이지만, 거울 대칭은 아니라는 점을 이용했다. 약간 비대칭 삼각 구조라서 회전자가 특정 방향으로 회전할 때 에너지를 적게 소모한다. 그 결과, 아세틸렌 회전자는 한쪽으로만 계속 회전할 수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올리버 그뢰닝(Oliver Gröning) 박사는 “우리가 개발한 모터는 99%의 확률로 방향 안정성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유사한 나노 모터와 구별된다”라고 밝혔다.
(아령 모양의 아세틸렌 분자가 회전하는 모습을 주사터널링현미경으로 5000만 배 확대한 이미지.)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의 특성 동시에 지녀
분자 크기의 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면 수수께끼 같은 양자 역학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스위스 연구팀의 나노 모터는 열에너지와 전기 에너지로 구동된다. 고전 물리학 관점에서는 회전자를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임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연구원들은 임계치보다 훨씬 낮은 -256℃ 이하 온도, 또는 30mV 미만의 전압에서도 모터가 일정한 속도로 회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원자 크기의 미시세계에서는 ‘양자 터널링(Quantum tunnelling)’으로 입자가 에너지 장벽을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고전 물리학 측면에서 보면 회전자를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가 부족하더라도, 양자 터널링 효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양자 역학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비대칭 구조로 원자가 결합했어도 양자 터널링에서는 마찰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없어서 동등한 확률로 양쪽 회전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 그러나 나노 모터는 한 방향으로 회전했다. 이것은 터널링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이론적인 가정과 모순된 결과다.
연구팀은 나노 모터가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의 특성을 동시에 지녔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그뢰닝 박사는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라 엔트로피는 폐쇄된 시스템에서 절대로 감소하지 않는다. 즉, 터널링 도중에 에너지 손실이 없다면 모터는 무작위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모터가 한쪽으로만 회전한 사실은 터널링 과정에서 극히 미세한 에너지 손실이 발생했음을 나타낸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더 작은 나노머신을 개발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코로나바이러스처럼 크기가 80-100nm에 불과한 나노로봇을 만들려면 분자 크기의 나노 모터 개발이 필수적이고, 그로 인해 겪게 될 미시세계의 양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요약
1. 스위스 연구팀이 16개의 원자로 구성된 나노모터를 개발함.
2. 원자 규모에서는 래칫기어(한쪽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톱니바퀴)를 구현하기 어렵지만, 연구팀은 비대칭 삼각형 구조의 고정자를 사용해 이를 해결함.
3. 고전 물리학에서는 회전자를 움직이기 위해 최소한의 에너지가 필요함. 근데 나노모터는 임계치보다 훨씬 낮은 온도, 전압에서도 작동함.
4. 이는 양자 터널링 효과 때문임.
5. 반면에 양자 역학만으로 이해하기 힘든 측면도 있음. 고정자가 비대칭 구조라도 양자 터널링에서는 마찰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없어서 모터가 무작위 방향으로 회전해야 함. 그러나 나노 모터는 한 방향으로만 회전했음. 이는 양자 터널링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이론과 모순된 결과임.
6. 연구팀은 이런 현상을 '나노 모터가 고전 물리학과 양자 물리학의 특성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이라고 해석함.
동시.. 저것도 특이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