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인터넷에는 이렇게 소련군이 보병으로 인해전술을 펼쳤단,일명'우라돌격'이라는 것이 돌아다닌다.
그리고 이와함께 총알이랑 총을 따로주고 돌격시켰다는 말들까지 돌아다니며 소련을 까는 훌륭한 밑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일까?
41년 독소전쟁이 시작된 후 소련이 붕괴직전까지 몰리자 공황상태에 빠진 병사들 일부는 탈영을 시도했는데,이 탈영병들과 군사범죄자들은 대거 형벌부대에 소속되어 본보기로 자살임무나 사망위험이 매우 높은 전장에 투입되었다.
아마 넷상에 돌아다니는 소련군 전설은 이들이 소련군 전체로 과장된 것일 거다.
실제 지뢰밭 걷기나 무기 오링인체 전선투입은 진짜 형벌부대에서 있던 일이다.
하지만 소련 정규군들에게는 우라돌격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애초에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우라돌격글의 시초가 된 영화 에너미 앳더 게이트에서 나온 소련군은 거짓부렁이다.
이영화는 소련 참전용사들에게 '우리는 저렇게 안싸웠어 ㅅㅂ'라는 반응을 들었다.
소련군은 스탈린그라드에서 오히려 선진적인 전술을 보여주었다.
분대단위로 군을 잘게 쪼개 각개전투를 시키고 근접전으로 독일군의 폭격과 포위를 막고 난전으로 손실을 극대화하며,소련군 개인마다 다수의 수류탄을 보급해 독일군이 있을법한 지역은 일단 수류탄을 던지고 진격하며 순간화력의 제왕 파파샤등의 기관단총을 들고 나오는 등의 현대 미군이 쓰는 전술과 매우 유사한 전술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전차와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합동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42년 11월달부터는 공군도 가세했다.
이런것이 과연 우라돌격인가?
만약 소련이 영화에 나오는 대로 공세했다면 당시 병력이 독일보다 부족했기 때문에 독일은 쉽게 돌파에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련은 매우 선진적이고 비겁하게 싸웠고,그결과 당시 세계 최고의 강군이었던 독일군을 애먹이며 역포위에 성공했다.
다른 전투에서도 소련군은 우라돌격이라 할만한 전술은 개전 초 이후 딱히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41년 12월 9일,주코프는 일선 지휘관들에게 정면공격을 금지하고 측면 돌파를 하라는 명령을 전군에 하달했다.
우라돌격이란 전술을 초장에 금지한 것이다.
그대신 소련은 대전 직후,제작자가 숙청당해 잊혀졌던 투하쳅스키의 '종심 작전'을 급하게 부활시켜 42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종심 작전이란 전차와 기계화부대,화력을 강화시킨 보병의 합동부대가 포병들의 지원을 받으며 적의 취약점을 찾아 빠르게 찢으며 돌파하고 선두부대는 적의 후방 중요지역을 박살내며 적을 마비시킨후 쭉 진격하고 후발대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마비되어 우왕좌왕하는 적을 포위섬멸한다는 작전이었다.
이때 항공기와 공수부대들이 후방에서 적을 타격하거나 절단하며 적의 마비를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소련군 보병들에게도 화력을 위해 1인당 수류탄 2발 이상과 기관단총등이 주어졌다.
심지어 엄호와 적의 발목을 붙잡기 위한 파파샤 소대들이 따로 존재했을 정도이다.
애초에 총을 주워 싸우라같은 병신같은 짓은 인명경시의 소련군도 거르는 짓이었고,애초에 소련군도 귀중한 인력을 마구 낭비하는 행동은 사형감이었다.
소련군은 개전초 참패에서 어느정도 회복되자 바로 종심전술에 의거한 공세를 펼쳤다.
물론 초반에는 전차와 보병의 조합이 좋지 않아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무식한 보병과 전차의 돌격이 아닌,잘 무장된 병사와 전차가 적의 취약한 부분을 격파하며 적의 종심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이는 독소전 초반 졸렬했던 소련군 장교들의 지휘에도 볼호프와 레닌그라드 지구에서 독일군의 방어선을 함락 위기까지 몰아붙였다.
적의 가장 약한 방어선을 돌파해 들어가 적을 포위섬멸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소련은 매 공세마다 종심작전과 수작 우위를 살린 근접전으로(화력전) 적을 밀어붙이며 결국 베를린까지 들어간다.
43년부터 독일과 소련의 전력손실은 1:2에서 1:1,심지어 44년 6월 바그라티온 작전때부터는 독일군의 사망자나 총손실이 소련군보다 높아지기도 했다.
결코 무모한 보병돌격을 했다면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는데,그럼 소련군은 주코프의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우라돌격을 했단말인가?
독소전초 포위되거나 무기도 없이 갑자기 소집된 소련군들은 바로 일선에 나가 적과 싸워야 했고,
대숙청의 영향으로 무능하고 바보같은 장교들까지 겹쳐지며 일선 사수나 가망없는 공격을 해야 했다.
다만 이때도 최소한 포병지원은 있었고,총과 총알은 무조건 충분하게 주어졌다.
게다가 모스크바 공방전때같이 정면공격이 아닌 후방침투와 기습이 41년 말부턴 더 많이 벌어졌다.
애초에 진정한 우라돌격이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우라돌격이랑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곳도 있었다.
바로 포위되거나 후방에 고립된 부대였다.
이들은 진짜 칼이나 나무판자를 들고 기관총대에 맞서 돌격했다.
하지만 이들을 목숨을 허무하게 버린 멍청이라 비웃기 전에 생각을 한번 해보자.
당신은 41년 후방에서 포위된 소련군이다.
당신의 부대는 본대와 연락이 끊긴 시한부 신세다.
그런데,당신은 소련군 포로와 민간인들이 독일놈들에게 처절하게 학살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당신은 독일군이 자비가 없고,당신도 항복하면 똑같은 꼴이 될거라는걸 안다.
게다가 당신이 얼핏 들었던 라디오에 의하면 소련군 부대와 민간인들이 급히 이 지역에서 철수중이고,독일군이 그들을 추격하고 있다 들었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소련군은 이 상황에서 소련의 인민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피난민과 패잔병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수 있게 최후의 돌격을 한 것이다.
이는 결코 개죽음이 아닌,숭고한 희생이었다.
많은 소련군이 조국을 위해 독일군에게 무의미하다 생각될 수 있는 돌격을 해대며 시간을 벌었고,이런 부대들을 처리하느라 독일군은 진격을 늦출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시간을 번 소련은 모든 병력을 집결시켜 결국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독일군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우라돌격은 결코 멍청한 자살돌격이 아닌,독소전 초 조국을 지키기 위한 군인들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