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찍찍이
즉 벨크로(프랑스어로 '벨벳'을 뜻하는 '벨루-velour 와 고리를 뜻하는 크로셰-crocehet의 합성어)의 탄생과정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해
인물은 스위스 출신의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라는 남자였는데,
현대 한국에 태어났다면 아내가 안녕하세요에 사연을 신청할만큼,
본업보다는 사냥에 미쳐있던 인물이었어
1941년 어느날 드 메스트랄은 그날도 와이프의 스트레스 지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산토끼를 잡는데 성공했어
* 그러나 사냥 성공의 기쁨도 잠시, 정신없이 사냥개를 쫓아가던 드 메스트랄은 그만 가시풀이 우거진 숲속에 갇히고 말았는데,
다행히 '번개'로 이름 붙혀진 그의 사냥개의 도움으로 겨우 가시풀을 탈출하는데 성공했어
그리고 이것의 드 메스트랄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는데,
온 몸에 들러붙은 가시를 때어내려고 옷을 벗어 털어 보았지만, 가시가 쉽사리 떨어지 않았던 것에서 그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얻는데,
집에와서 잘 떨어지지 않던 가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였어
그 가시는 도꼬마리 가시였고, 그 가시의 끝이 갈고리처럼 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성질을 이용하여 까끌까끌한 갈고리 모양이 촘촘히 박힌 천과 부드러운 천을 딱 붙히는 벨크로의 발명을 생각하게 되었지
드 메스트랄은 지퍼나 단추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여밈단추에 대한 연구를 그로부터 무려 10년동안 자신의 방에서 진행하였는데,
마침내 1951년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고,
희망에 부풀어 다니던 전기회사에서 사표를 쓰고 이와 관련한 사업을 시작하였어
하지만 그의 발명품은 생각처럼 쉽게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그 출시 제품은 몇 번 붙였다 떼거나 빨래를 하고 나면 갈고리가 쉽게 떨어져서 접착력이 약해지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야...
이 때문에 회사까지 사표 쓰고 사업에 뛰어들었던 드 메스트랄은 파산 직전이 되었어(와이프의 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이놈의 인간이 10년 동안 방에서 쳐박혀 있다가 하는 짓이...)
하지만 드 메스트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발명품에 보완점을 찾았는데,
나일론을 고온과 저온 상태로 번갈아가며 연구한 끝네 너무 부드럽지도 뻣뻣하지 않아도 튼튼한 실의 발명에 성공했고
그 실을 이용하여 천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직조기 또한 고안하였어
거기에 더불어 여러 종류의 열원을 시험한 끝에 적외선을 이용하면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원리까지 파악한 이후,
마지막으로 갈고리를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발기계로 머리를 깎는 이발사의 모습에서 그 아이디어를 착안하였어
즉 원형으로 만든 고리의 중간을 자릐되 한쪽 부분이 더 길게 남겨지도록 자르면 자연적으로 갈고리 모양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지
* 드 메스트랄은 이때 비로소 자신의 발명품에 대해 '벨크로'라고 이름을 붙혀주었어, 보통명사가 된 고유명사의 대표적 사례
초기 벨크로는 마치 쓰다 남은 천조각을 이어붙힌 듯한 이미지로 인하여,
여전히 그의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지만,
결국 어린이용 책가방과 지갑에서 대박을 터뜨리는데 성공했고,
(드 메스트랄은 타켓은 원래 어린이용 상품이 아닌 고급 의류제품 이었으나)
이후 스키복과 스쿠버다이빙복으로도 각광을 받고,
닐 암스트롱이 우주복에도 벨크로가 쓰이게 되었는데,
우주산업의 역사에 있어서도,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벨크로의 중요성은 매우 중대하게 평가를 받아
(단적인 예로 우주인의 식사만 해도 음식용기에 벨크로를 붙여 고정한 뒤 식사를 함)
벨크로는 이외에도 시계줄, 수술가운, 혈압측정기, 어린이 안전다트, 의료용, 군복, 항공기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하게 되었고,
조르주 드 메스트랄도 결국 생전에 벨크로가 세계 100대 기업안에 드는 것을 보아 돈방석과 더불어 엄청난 사회적 성공을 경험하였어
- 근성의 승리!!!!!!
이상으로 생체모방기술(biomimetics)의 선구자로 꼽히는 조르주 드 메스트랄과 벨크로에 관한 소개글을 마칠게
읽어주신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