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동남아 유일의 유교, 한자 문화권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미국, 중국 등 강대국들과 겨뤄 자주성을 지켜낸 나라로 유명한 베트남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와 다르게 현대 베트남의 꾸옥응으(국어)라고 불리는 문자는,
베트남말을 로마자화 하여 표기 하는데,
이 꾸윽응으는 17C 프랑스인 신부 알렉상드르 드 로드에 의해 만들어졌어
이 예수회 신부는 원래 일본으로 선교를 가려고 했던 인물로,
에도막부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그 계획이 어려워지자,
베트남으로 항로를 변경하였고,
현지문화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여러 신학문들을 전하여주는 인물로 인정받아 베트남 왕궁에서 10년 동안 지낼 수 있었어
이 기간 동안 그는 포르투갈어-라틴어-베트남어 사전을 편찬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로드 이전에 온 선교사들 또한 한자의 사용으로 인해 많은 애를 먹었고,
이에 로드는 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어 습득을 목적으로 하여 라틴 문자로 베트남어를 표기한 것을 정리하여 그 체계를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꾸윽응으(국어)의 기원이 되었지
이후 베트남에서 카톨릭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지 드 로드는 마카오로 가 10년을 지냈고 이후 다시 베트남에 입국하여 남부 지역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끝내 정세불안으로 베트남을 떠나 로마로 가게 되었어
이후 그는 다시 베트남에 가기를 희망 하였으나 이란으로 파견 되었고 이란에서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됨
그렇다면 이 꾸윽응으 이전에는 베트남인들에게 한자 이외의 표기 수단이 없었을까?
베트남인들 또한 8C경 우리의 이두처럼 쯔놈이라 불리는 베트남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문자를 발명하였어
유교 엘리트들 또한 이 쯔놈을 사용하기를 꺼려하여,
널리 보급되는데는 실패하였지
물론 프랑스인 선교사가 발명했던 꾸옥응으 또한 유교 엘리트들에게 터부시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꾸옥응으는 그 위상이 급상승하게 되었는데,
이는 식민통치자들의 통치의 편리성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베트남 식민통치의 장애물이었던 유교 문화와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 또한 겸하였어.
어쨋든 프랑스 식민당국은 학교와 신문을 통하여 이 꾸옥응으의 보급에 매우 적극적 이었지
반면 베트남인들에게 꾸옥응으의 사용은 친프적인 것으로 배척 되었으며,
특히 관료, 지식층 등 구지배계급들은 한자와 쯔놈의 사용에 강한 애착을 가졌고,
프랑스 식민당국의 꾸옥응으로 발표되는 프로파간다에 맞서는,
베트남 지식계급의 논설이나 문학작품은 꼭 한문과 쯔놈으로 발표되었어
하지만 베트남이 독립하였을때 남북베트남 모두 꾸옥응으를 베트남어의 공식문자로 지정하였는데,
한자나 쯔놈에 비하여 꾸옥응으가 압도적으로 배우기 쉽고 쓰기 편리하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 이었으며,
1905년 러일전쟁 또한 식민주의에 상징으로 여기지던 꾸옥응으의 위상에 영향을 주었는데,
러일전쟁을 계기로 베트남의 독립운동 주도세력은 유교에 기반했던 구 엘리트 세력에서,
신학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근대적 민족주의 세력으로 그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갔고,
이 근대적 민족주의자들은 신식학교를 세우고 베트남인들을 교육하는 것에 열심 이었는데,
그들은 그 중심에 한자대신에 실용성에서 압도적으로 우수하였던 꾸옥응으를 놓았어
* 이후 시간이 더 흘러 1930년대쯤 되면 한자는 완전히 쇠퇴하고 꾸옥응으가 지식인 계층에서도 명백한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베트남의 매우 낮은 문맹률에는 한자가 꾸옥응으로 대체된 것 또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로 평가받아
결국 한자를 대체한 문자 꾸옥응으
그 과정에서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의 고민과,
언어와 문자란 어떠한 것인가?
글을 쓰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결론은 후손들에게 아무런 딜레마 없이 너무도 효율적인 문자를 사용하도록 하여준 세종대왕님께 감사를... 세종대왕님 만세!!! 고기도 만세!!!!!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기-승-전-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