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국가를 세워 후대에 전해준 영웅 왕건
이번 글에서는 <고려사>에 묘사 된 태조왕건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해
943년 몸이 편치 못하여 마침내 정무의 처리를 중단한 왕건은 대신 염상과 왕규 그리고 박수문을 곁에 두고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하였어
"한나라 문제는 말하기를 '천하 만물이 생겨나서 죽지 않은 것이 없으니 죽음은 천지의 이치요 만물의 자연이다. 어찌 너무 슬퍼하겠느냐'고 하였으니 옛날 명철한 왕들은 마음을 이렇게 먹었던 것이다. 내가 병에 걸린 지 벌써 20여일이 지났다. 죽는 것을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노니 무슨 근심이 있으랴? 한문제의 말이 곧 나의 뜻이다.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안팎의 중요한 일들은 그대들이 태자 무와 함께 처리하고 나서 나에게 보고하라"
그날부터 아흐레가 흘러, 왕건의 병은 몹시 위독하여 졌는데, 왕건은 학사 김악에게 명하여 유조를 받아 적게 하였으며, 그 초고가 이루어진 뒤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어
그리고 좌우의 신하들의 큰 소리로 목메어 울부짖자,
왕건은 "이것이 무슨 소리냐" 물었어
신하들이 "성상께서 백성의 부모가 되었다가 오늘 갑자기 여러 신하들을 버리고 가려 하시니 저희들이 슬픔을 참을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왕건의 남긴 마지막 말은,
" 덧없는 인생이란 엣날부터 으레 이런 것이다..."
였으며, 이 말을 남기고 왕건은 영원히 눈을 감았어
이때가 왕건의 즉위한 지 26년째 되던 때이자 향년 67세였지
* 왕건의 마지막 한마디는 현대의 사극이나 문학작품에서 주로 그가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하고 간 것으로 해석되어져
* 왕건은 송악산 서쪽 기슭 파지동 남쪽에 묻혔으며, 그 능호는 '현릉'으로 칭해졌어
" 왕은 포부가 크고 원대하였으며 국사를 공정하게 처리하고 상벌을 공평히 하며 절약을 숭상하고 현명한 신하들을 등용하며 유교를 중히 여겼다."- <고려사> 태조왕건의 붕어한 후 그 인생을 총평하면서
*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