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니는 스타트업에서 일한지 1년좀 넘었고
업계에서 5년차 되는개발자임.
스타트업이라면 보통 단점과 장점이 같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이상한건지 단점밖에 안보여서 현타오는데 한번 봐주셈.
1.
일이 광범위하고 많은대신 내 이력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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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많기는 ㅈㄴ 많은데
내 이력에 도움이 안되고
퇴사하는순간 의미없어지는 곁다리 사내업무가 ㅈㄴ 많음.
개발할 양이 산더미라
지금 있는 개발자 몇명으로는 감당이 안되서
외부 개발 용역한테 전임하고
사내 개발자들은 외부업체가 개발해온 결과물 검증하고 매니저 하기에도 급급함.
윗선에서는 자체개발팀 만드는것보다
이게 더 싸게 먹히는지 앞으로도 자체개발팀없이 계속 외주주면서 해결하려고 함.
내가 개발자인지 qa인지 그냥 사무직인지
그냥 닥치는대로 일하는데 막노동하는 기분이 듬.
2.
사람이 없어서 힘든대신 내 결정권도 많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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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스타트업은 ceo가
단순 경영자라서 본인사업아이템에 해당하는 전문지식이 없으니
각 분야에 맞는 전문인력을 뽑아서 실무자가 각 분야를 책임지는 형식일텐데
여긴 ceo가 관련업계 30년 몸담은 전문지식인이라 그냥 까라는대로 까야함.
회의는 ㅈㄴ 많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정해보자"는 취지가 아니라
그냥 대표가 이렇게 저렇게 진행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쏼라쏼라하면
다들 이사급부터 말단 대리들까지 고개 끄덕끄덕하다가 끝나는 형식임.
이런걸 회의라고 할수 있나싶고
굳이 나서서 주도적으로 하려고 하면
대표랑 논쟁해서 이겨먹어야함.
월급쟁이가 지 회사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까지 하겠어.
다들 걍 까라는 대로 까면서 책임소재만 피해가려함.
3.
체계가 없고 빡센 대신 유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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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스타트업 CEO들은 젊은 편임.
그리고 스타트업은 돈이 후달려서 복지가 좋을수가 없음.
일은 많은데 연봉도 짜고 복지가 안좋고 복지를 해줄수도없는 형편이다?
그럼 실무자들입장에선 딱히 메리트가 없고
사람하나 그만두면 새로뽑아서 직무교육까지해야하니
회사손해라는걸 임원들도 다 잘 알아서
"일만 똑바로해라. 딴건 신경안쓸테니" 하는 느낌으로
돈안들고 노력이 필요없는 쪽으로는 최대한 풀어주면서 편의를 봐주려고 하는걸로 알고있음.
탄력근무부터 해서
회식이나 혼밥같은 근무 외적인 사회생활 부분에서 눈치 안주기도 하고
근무외 수당이 있거나 마일리지시스템이 있고
당일 묻지마 휴가계같은거.
근데 여긴 CEO 포함 임원진들 나잇대가 5060이라
사회생활로 닳고 닳은 구시대 기업문화가 그대로 재현됨.
스타트업이 아니었던 이전 직장에서도 아무 불만없었는데
여긴 ㄹㅇ 미생도 아니고 00년대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관례들이 자행되고 숨막히게 수직적임.
회식 절대 못빠지고 (심지어 연차도 못쓰게함) 점심혼밥먹는것도 절대 허용해주지않음.
뭐가 되었든 기본적으로 단체적 의사결정할때
"~하면 좋을것같은데 할사람 있으면 말해줘요" 가 아니라
"~할껀데 안할사람이나 싫은사람 있으면 손들어봐요" ㅇㅈㄹ 하는식임.
회식자리에서 각자 삼삼오오 소소하게 이야기하면서 고기랑 술먹다가 집에가는 자리?
그런거없음.
사실상 비공식 회의의 장이라 업무결정과 회의는 기본에
한명이 말할때는 다른사람들도 밥먹다말고 모두가 주목해야만 하게 레크레이션식으로 진행함.
각자 이야기하고싶은 사람끼리 이야기하면 주변방송이되서 잡음이 되는 분위기임.
대표가 "저는 이 회사랑 결혼할겁니다" 같은 낯뜨거운 말 듣는걸 너무 좋아하고
임원들은 그거에 장단 맞춰서 신나게 빨아대고
나머지 실무자 라인들은 어거지로 앉아서 입닫고 리액션, 반찬 리필 셔틀밖에 할게 없음.
중간에 가고싶을때는 대표랑 임원들 있는 자리에 가서 무슨일때문에 먼저 가야하는지 설명해서 이해받고 인사하고 가야함.
저녁 회식 술자리에서 직급순으로 한명씩 전부 앞으로 나와서
새해 소감이랑 신년의 각오 같은거 이야기하고 받은 명절 떡값은 아직도 기억에서 안잊혀짐.
다들 즐거운듯 웃고있지만 다들 고역이고 어거지로 하하하 거리는게 느껴짐.
오픈 때문에 몇주간 야근에 철야해도 추가 근무에 대한 어떤 보상도 없고
한달전에 제출한 휴가도 가끔 직전날 취소될때도 있음
아니 한달전에 휴가계 통과되서
글램핑 선금 다주고 예약했는데
때 다되서 취소때리면
예약비 몇십만원 배상해주는것도 아니고 어카자는건지
휴가계 승인을 하지 말던지.
4.
회사가 크게 발전함에 따라 내 사내 위치도 크게 올라갈수 있다.
회사의 성장이 내가 이직할때 개발 이력에는 가산이 될수있지만
기술직 특성상 회사의 성장과 내 성장은 별개이기때문에 이에 해당되지 않음.
망해가는 회사이라고 해도 개발실력과 기술스택을 쌓을수있으면 이득이고
떡상하는 회사라고 해도 사내업무 위주로 영양가없는 일하면 개발자로서의 나는 경쟁력이 떨어져서 몸값 못받음.
이렇게 듣다보면
회사가 놀이터냐 니 입맛에 맞춰야 하냐 사회생활 빻았다 뭐 이런 반응 나올수도있는데
내가 바라는건 일관성임.
스타트업의 단점을 가졌으면 스타트업의 장점도 있어야하고
기성회사의 장점을 가졌으면 기성회사의 단점또한 감수하겠다는건데
스타트업의 단점을 가졌는데 스타트업의 장점은 없고
기성회사의 단점을 가졌으니 이게 뭔가싶은거.
다니기 싫고 단점만 나열했는데 다닐이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