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가 아니고 '삼국사' 원본 책 표지에도 삼국사라고 적혀있는데 일제시대 때 야사에서나 사용하는 '기'자를 붙여놓은 걸 교과서에서 가르치고 저렇게 방송에도 나오다니.. 역사학자들 X 잡고 반성해라. 참고로 '기'자는 정실 역사에 사용하는 것과 야사에 사용하는게 다른데 삼국사기에 붙어있는 '기'자는 야사에 붙이는 것..
이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굳이 반박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니 댓글 써 봅니다. 현전하는 여러 '삼국사기'의 판본이 그 표지에 '삼국사'라고 적어 놓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건 보통 약칭으로 이해하지 일제의 왜곡 운운하는 건 표지만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결과입니다. 먼저 '동문선'에는 김부식이 사서 편찬을 마치고 그것을 인종에게 바치면서 올린 글이 실렸는데, 그 제목이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입니다. 일제가 사서 제목을 왜곡했다면 어떻게 조선 전기에 편찬한 '동문선'에 '삼국사기'라는 단어가 튀어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표지에는 '삼국사'라고 했어도 책 속에서는 '삼국사기'라고 나옵니다. 일제가 시간을 달려서 '기'자 넣어서 판각을 다시 했나 보네요.
'삼국사기'라는 제목은 아무리 봐도 사마천의 '사기'를 오마주한 것일 뿐입니다. 체계도 '사기'처럼 기전체이고요. '사기'에도 '삼국사기'처럼 버젓이 '기(記)'가 붙었는데, 이것도 야사입니까? 중국 25사의 맨 처음이자 정점인 '사기'가요? 도대체 '기' 자가 야사에나 쓴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소리인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제목 하나 바꾼다고 사서 성격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발상입니다.
그래도 저때는 헬반도 유일하게 최소한 노블리스오블리쥬, 서양의 기사도 같은 게 있는 시절이었지... 일반 군졸은 물론, 귀족, 왕까지 직접 참전하여 국토를 지키고, 뺐고 했으니까... 나름 상남자들의 시대였다고 본다.
하지만 고려 이후, 대외진출을 완전히 포기하고 헬반도에 갇혀 살면서부터는 귀족과 왕은 뒤에 숨어있고 엄한 백성들만 전쟁터에 끌려 나갔지. 유교가 국교화된 헬조선 들어와서는 왕이란 새퀴들 뒤에 숨는 것도 모자라서 먼저 압록강으로 도망가기 바빴고... 헬조선 국뽕 사학자놈들은 이런 사정은 간과하고 일본의 막부정권을 후진적인 군사정부라 아직까지도 폄하하며 자위질 하고 있지.
유럽의 기사도와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 그리고 미국의 청교도 정신 이들의 진정한 의미는 지배자들이 자신의 과오를 책임지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이 지금까지 계승되어 정치 또는 경제가 발전한 선진국이 된 것이고...
반면에 헬조선의 선비꼰대 유교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 성리학에서의 예학은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 충성이란 명분으로 역성혁명, 시민혁명을 인정하지 않았고, 부당한 차별과 억압을 해도 주인에게 대드는 것은 예의없는 패륜이라 주입시키며 노동을 착취했지. 이게 바로 소학이다. 국뽕 사학자 쓰레기놈들은 평민들까지도 등교할 수 있었던 서당이 무슨 발전인냥 호도하는데, 진짜 의도는 저기에 있었다. 그리고 이 소학을 보급하려 평생을 애쓰고, 노력하고, 몰두하며 조선후기 지주전호제를 옹호한 놈들이 바로 니들이 존경하는 그 개쉐끼들 이황과 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