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일화는 1978년 낭가파르바트를 2번째로 올랐을 때의 이야기이다.
왼쪽이 라인홀트 메스너, 오른쪽이 귄터 메스너
원래 그에게는 동생 '귄터 메스너'가 있었는데, 동생 또한 뛰어난 등반가였다.
1970년, 동생과 처음으로 등정한 8,000m급 산이 히말라야 최악의 난이도로 손꼽히는 낭가파르바트였고,
(당시에는 사망률이 80% 정도였다 10명 오르면 8명이 죽는 산)
그 중에서도 최악의 코스를 골랐다. 바로 루팔 남벽 코스인데
이 루팔 남벽은 수직빙벽이 3,500m로 솟아있는 히말라야 3대 난벽이고, 당시에는 아무도 이 방면으로 오른 사람이 없었고 엄두도 못내었다.
두 형제는 이 죽음의 빙벽 루트를 첫 시도에서 성공시킨다. (첫 시도, 최초 초등정)
그러나 정상 등정 이후
반대편 디아미르 벽으로 내려오던 하산 과정에서 눈앞에서 동생 귄터 메스너가 눈사태에 휩쓸려 사망하고 만다.
자신도 동상으로 발가락 7개를 잃고
가까스로 살아난 메스너는 살아 돌아온 뒤에도 '동생을 죽였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엄청난 트라우마가 생긴다.
8년이 지나고, 메스너는 동생을 잃었던 디아미르 벽을 단독, 무산소로 오르기로 한다.
(무산소란 산소통 없이 등반하는 것을 말한다. 해발 8,000m 이상으로 가면 공기압이 해수면의 30%밖에 안된다.
현재에도 무산소 등반 성공은 15명 정도다.)
라인홀트 메스너는 8년이 지나고 다시 낭가파르바트 앞에 섰지만, 계속해서 동생의 죽음이 떠올랐다고 한다.
출발 전날까지 숙소에서 불안감에 잠을 설치며 수차례 짐을 풀었다 다시 싸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오직 고봉에서 몰아치는 바람소리만이 가득한 베이스캠프를 떠났고, 무산소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낸 이탈리아 필뇌스 모습.
저곳의 정상을 아버지와 함께 등정했을 때가 5세 (한국나이 6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