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europe/2022/05/17/V5PSWY3YB5FX3BBSPCZRIBQJRY/
영국의 더 타임스와 가디언은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합참의장격∙상급 대장)이
적게는 700명 규모인 전술 대대 병력의 이동까지 일일이 지시하고 있다”고,
서방 군사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더 타임스는 “푸틴의 간섭이 러시아군의 실패를 부채질한다”고 전했다.
서방 군 소식통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인적으로 너무 개입하고 있으며. 준장이나 대령 수준에서 내릴 법한
작전.전술적 결정을 직접 내리고 있다.
푸틴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과 함께 최근 있었던 우크라이나 동부의 전략적인 강도하 작전에
여러 차례 개입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패배를 겪은 돈바스에서의 병력 운용을 직접 결정해 왔다.
군 소식통은 최근 러시아군이 연패한 동부저선의 전투들을 언급하며 푸틴과 게라시모프가
준장 대령급 수준의 전술적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러시아군은 지금까지
돈바스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는데 실패했고, 한달 동안 공세를 폈음에도 소규모의 우크라이나 군대를
포위하는데 여러 차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2022. 5.16일자 가디언 보도)
블라디미르 푸틴
1975년 레닌그라드대학교 법학전공 졸업
1975년 122mm 곡사포대장(2019년 크렘린궁 발표)
1975년 소비에트 국가보안위원회(KGB) 입사
1976년 KGB 제 2총국 레닌그라드 보안담당관
1985년 KGB 제 1총국 동독 드레스덴 관리관
1991년 레닌그라드대학교 교직원
1991년 레닌그라드 시위원장 보좌관
1991년 KGB 중령 퇴사
199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
1996년 보리스 옐친 선거캠프 합류
1998년 연방보안국(FSB) 장관
1999년 연방총리
현 러시아 대통령
제공하는 사이트마다 조금씩 내용의 차이가 있습니다. .
시위원장 보좌관과 KGB를 겸직했다는 내용도 있음
고국으로 돌아와 1991년 자차로 무면허 택시 운행을 했다는 인터뷰 발언도 있음
발레리 게라시모프
1973년 카잔 수보로프 군사학교 수석 졸업1977년 고등전차사령부학교 졸업/임관
1977년 제90근위전차사단 근무
1982년 제29차량화소총사단 대대장
1987년 제29차량화소총사단 연대장
1993년 제144근위차량화소총 사단장
1994년 북서지역 붉은기 작전단장
1997년 제1근위전차군 제1부사령관
2001년 제58연합군 사령관
2006년 북카프카스군관구 사령관
2007년 상트페테르부르크군관구 사령관
2010년 모스크바군관구 사령관
현 러시아 총참모장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1978년 수볼로프 사관학교 졸업/ 보병소위 임관1982년 모스크바 고등연합사령부학교 졸업
1982년 극동군사령부 산하 부대 근무
1991년 동독파견군 작전부국장
1992년 제154차량화소총 대대장
1999년 제1근위차량화소총 연대장/ 체첸전쟁 참전
2000년 북카프카스 북관구 참모장
2003년 제19차령화소총 사단장
2005년 제36연합군 사령관
2008년 극동군관구 제5연합적기군 사령관
2012년 중앙군관구 제1부사령관
2016년 시리아주둔군 사령관/ 러시아 연방영웅 훈장
2022년 남부군관구 사령관
2차대전 독일군 주요지휘관
빌헬름 카이텔
원수/국방군 총사령관, 제2제국 장교/ 1차대전 참전 라카이텔(아첨꾼)
독소전쟁의 작전 계획과 실행을 맡았으나,
계속되는 고위 장군들의 반대 의견과 항명 등에 분개한 히틀러가 직접 군 통수권을 쥐면서
카이텔은 히틀러에게 반대되는 의견을 거의 내놓지 않게 되었다.
동료 장군들은 카이텔을 '라카이텔(Lakeitel, 아첨꾼)'이라는 경멸섞인 별명으로 불렀다.
하인리히 힘러
SS제국 지도자/ SS장관, 제2제국 사관생도, 내무장관
SS로 약칭되는 친위대 SS국가지도자로서 SS와 게슈타포를 지휘했다.
힘러는 유대인 대학살의 실무를 주도한 최고 책임자였다.
나치 강제수용소와 학살대인 특수작전집단을 창설한 사람이자, 최종 지휘 책임자로서,
600만에서 1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산업적 규모로 학살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
연합군에 의해 주요 전범으로 체포되자 자살하였다.
헤르만 괴링
제국원수/공군사령관/ 제2제국 육군 전투조종사 출신 (입이 문제)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의 초기 당원이자,
초기 나치 돌격대(Sturmabteilung/SA)의 지휘관을 지냈고, 게슈타포를 창설했다.
1935년 재군비 선언 이후에는 나치 공군의 총사령관(제국원수)으로 공군을 창설하고 육성했다.
빌헬름 폰 리스트
원수/ A집단군 사령관 제2제국 장교/1차 대전 참전 / 청색작전(1942년)중 경질1939년 2차대전 개전 당시 제14군을 이끌고 폴란드 침공에 참여했다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원수/ A집단군 사령관 제2제국 장교/1차 대전 참전 /영.미 정전권유했다가 경질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남부집단군 총사령관 제2제국 장교/1차 대전 참전/ 동부전선 지휘권으로 반발
권터 폰 클루게
원수/남부집단군 총사령관 제2제국 장교/1차 대전 참전 /쿠르스크 전투 패배
발터 모델
원수/서부전선 총사령관 /제2제국 장교/1차 대전 참전 /네로명령 거부 후 자결
에르빈 롬멜
원수/B집단군 사령관/ 1차 대전 철십자훈장 수훈 /발키리 작전 연루로 자결
임무형 지휘체계
(Auftragstaktik). 임무형 전술
독일어 Auftrag(임무)와 taktik(전술)의 합성어
불확실성이 뚜렷한 전장에서 일선 지휘관에게 수단을 위임하고 행동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하며
달성 가능한 임무를 제시함으로써 자유롭고 창의적인 전술 행동을 보장하는 지휘체계 또는 지휘철학사상을 일컫는다.
세세한 사항을 구속하는 통제형 지휘 전술체계에 대비되는 체계로
19세기 중~후반기를 전후해 독일군에서 처음으로 정립된 특유의 군대 지휘체계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젝트는 '임무형 지휘는 수행의 세부사항까지 구속하는 명령형에 반대되는 것으로 수단을 위임하고실행을 위한 자유를 부여한 가운데 달성 가능한 목표를 부여하는 방식'이라 보았다.
미군에서는 임무형 지휘를 'Mission type orders'(임무형 명령)으로 번역하여 사용
상급지휘관은 예하지휘관에게 단지 일반적인 임무만을 부여하고 예하지휘관이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의 자유를 확보하도록 한다는 개념을 반영하는 단어라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