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죽일 수 있으되 욕보일 수는 없다.
수당 이남규, 구한말의 의병장(1855-1907)
5분만 시간을 주십시오, 책을 다 읽지 못했습니다.
도마 안중근(1879-1910)
비록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 아버지 고향이 조선인데 8도라고 들었다.
내 한발 한발에 조선에 살고 있는 인민들, 노동자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겠다.
8보(步)만 걷게 해다오.
김 알렉산드라, 독립운동가. (1885-1918)
문간에 검정 말이 모는 검은 마차가 자신을 데리러왔으니 가야겠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
소파 방정환(1899-1931)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니 더 이상 남길 말은 없다.
윤봉길, 독립운동가. (1908-1932)
조국의 자주독립이 오거든 나의 유골을 동지들의 손으로 가져다가
해방된 조국 땅 어디라도 좋으니 묻어주고,
무궁화꽃 한 송이를 무덤 위에 놓아주기 바란다.
백정기, 독립운동가.(1896-1934)
내가 죽거든 시체가 왜놈들 발에 차이지 않도록 화장해 재를 바다에 뿌려달라.
신채호, 역사가, 독립운동가. (1880-1936)
셈비끼야(千疋屋)의 멜론이 먹고싶소.
이상, 시인.(1910-1937)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고향에 가져가지 말고, 선산 같은 데 쓸 생각을 말고,
서울 공동묘지에, 유상규 군이 누워 있는 공동묘지에 나를 묻어주오.
도산 안창호, 독립운동가(1878-1938)
여보, 따뜻한 숭늉 한 사발이 먹고 싶소.
주기철, 목사, 독립운동가.(1897-1944)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야기할 필요 없다.
김용환, 독립유공자. 도박으로 위장하여 독립자금을 보냄. (1887-1946)
조국...조선...
몽양 여운형, 독립운동가.(1886-1947)
나의 칠십 평생을 회고하면, 살려고 산 것이 아니라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
백범 김구, 독립운동가.(1876-1949)
나는 공산군이 아니오. 나는 석두명(석주명의 이북 방언)이라 하는 나비 학자요!
석주명, 학자.(1908-1950)
우리 민족이 겪지 않았어야 할 참화와 재난과 동족상잔을 당하고 보니 원통하다.
조국과 민족의 장래가 걱정된다.
김규식, 독립운동가.(1881-1950)
더 일할 나이에 조국통일도 못 해보고 눈을 감으니 한스럽고 죄송할 뿐이다.
모름지기 평생의 소원인 통일 성업을 꼭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김종오, 대한민국의 합참의장.(1921-1966)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전태일, 노동자.(1948-1970)
상황이 아주 급박합니다.
5분 대기 소대 출동 지시를 했고 보안사에서 곧 밀어 닥칠 겁니다.
김오랑, 군인(1944-1979)
내 나라를 도로 찾으려고 고귀한 생명을 바친 우리 조상들의 사무친 한과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 산화한 장병들의 넋과 한을 잊지 말고
다시는 내 조국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손원일, 독립운동가, 군인(1909-1980)
일본군 출신 정일권과 백선엽이 모함 공작을 벌여 광복군의 씨를 말렸다.
김홍일, 독립운동가, 군인(1898-1980)
참선 잘 하그래이.
성철, 승려(1912-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