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참전의사를 전한 태국. 태국의 참전 결정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만 남한을 지원한다"라는 소련과 중국의 선전을 일축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태국은 전쟁 개전 5일만인 6월 30일에 쌀 4만톤을 지원하며 참전의사를 표명했으며 공군 파병을 시작으로 육군,해군까지 모두 파병합니다.
<출정하는 태국군>
6,326명의 태국 젊은이들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129명의 태국군이 낯선 이국의 땅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태국군은 폭찹고지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리는데 중공군의 피해는 전사 300여명인 반면 태국군의 피해는 전사 25명뿐이었습니다. 태국군은 이 전투에서 '리틀 타이거'라는 별명을 얻게됩니다.
<C-47 수송기를 운용했던 왕립 태국 공군>
전쟁초기 파병을 왔던 공군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부상병들과 물자들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72년 철수하는 태국군 중대>
또 태국군은 미군 다음으로 한국에 오래 주둔한 군대입니다. 총 22년간 한국에 주둔하였으며 휴전후에 전후복구사업에 기여합니다. 주한태국군은 점차 규모를 줄이다 1972년 마지막 태국군 중대가 철수하면서 태국군의 주한주둔사는 막을 내리게됩니다.(현재도 의장대원들이 유엔군사령부로 파견을 옵니다.)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