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와 여고생쟝의 아타라시한 유행어인거시에오)
본문은 해방 3년후(1948년) 엄흥섭이 거리에서 학생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채록한 것이다
일본어, 영어, 한문, 한국어,소련어 등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김윤진, <해방기 엄흥섭의 언어의식과 공동체의 구상> 中)
신조어 문체로 알려져 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36년 세월이 지난 직후,
한국인의 언어생활에는 상당 부분 일본어가 흡수되어 정말 자연스럽게 한본어가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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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정숙인 이번 일요일 결혼 한다는데 아주 괜찮은 헌옷감이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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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이가 곰보(아바다)인데도 신랑이 OK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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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반한게(호레루한게) 아니라 정숙이가 반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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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나루호도) 새로운 뉴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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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너 너 가케우동 한턱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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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아 '해부 노(Have N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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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쨍기 녜트(деньги нет= no mone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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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 콘사이스 영일사전 헌책방에다 팔아서 단팥죽(젠사이) 사먹자!"
씁쓸한 한본어 역사의 시작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