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개의 버스회사들이 왜 이곳 논밭에 불과했던 강남으로 온걸까
때는 68년으로 돌아간다
서울 - 부산을 잇는 고속도로가 놓이면
대중교통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누구난 아는 사실
하지만 당시는 군부독재정권이었다
그분의 선택을 받은 버스 회사만이 운영을 할 수 있는 시절이다
그는 8개의 버스회사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 선정한다
곧 이 8개 회사는 각자의 터미널을 운영하게 되는데
이후 강북 도심지의 교통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서울을 3개의 핵심공간으로 나눠 개발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에 따라 터미널도 3곳으로 종합하는 계획
<기존 도심 - 동대문터미널>
영등포 지역과
그리고 지금의 강남, 반포동 일대의 터미널
이렇게 3개의 터미널로 집약할 계획이었으나....
"강북의 조밀인구를 강남으로 소산시키는 방향으로 연구해야할 것이다"
박정희의 명령으로 강남중심 개발로 선회한다
곧 강남신화의 시작, 그리고 강남 종합터미널 시대가 열린다
5만평 부지
3만평의 고속터미널과 1만평의 시외버스터미널,
그리고 1만평의 택시승강장 및 시내버스터미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대형 주차장이 생긴 셈이다
기존에 버스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던 버스회사들은
어쩔 수 없이 쫓겨나듯 이곳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1976년, 7월 잠수교>
기존 도심에서 강남으로 향하는 인프라시설을 확충한다
3호터널로 기존도심과 강남을 가로막던 남산을 뚫고
잠수교로 강남으로 직접 연결한 것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뜻밖의 도심 교통문제...
도심 대중교통은 시내버스, 택시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강남에 몰리고 교통지옥이 열린다
이는 3호선 지하철이 개통되기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교통난이 심각해지자 서울시는 시외버스터미널을 남쪽으로 이전한다
오늘날의 남부터미널이 되는 거기로
율산그룹은 기존 시외버스터미널 부지를 13억원에 매입
1977년 20층 규모의 복합터미널을 계획하는 율산그룹
이곳에 호남·영동선 터미널을 짓는다는 꿈을 꾼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계열사 다 정리하고 경영진 교체.
그런데 횡령혐의와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신선호 대표가 구속된 것
터미널 공사가 계획대로 될리가 없다
결국 급조한 3층짜리 터미널을 짓는 걸로 그친다
그게 옛 호남선 터미널이다
오늘날 센트럴시티 위치에 있던 터미널
그런데 불과 3년뒤 경부선 터미널이 지어지는데
버스회사 8개가 280억을 모아 지은 고속버스터미널
규모와 공간 구성 면에서 호남선을 압도했다
상층부로 올라갈 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
1층, 3층, 5층 버스승강장이 있어 5층까지 버스가 올라가는 입체구조물이었다
백화점과 도매상가, 사무동까지 있었으니
그 바로 앞에 호남선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기념비적인 인상을 주면서 편리성까지 요구한 국가
최대규모 터미널은 수도 서울, 그리고 새로운 강남개발의 상징이 되어야했다
버스가 올라가는 경사로와 지지 구조체에 심각한 균열이 발견된다
급하게 보강을 한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구조보강으로 어떻게든 하려했지만 될리가 없다
곧 88년 5층 승강장을 폐쇄하고
이어 92년 3층까지 폐쇄한다
경사로가 철거된 경부선터미널의 모습
곧 이곳은 화훼시장이 들어선다
잘 보면 공간을 만드는 구조물이 승강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경부고속도로은 호남에 비해 대구, 부산쪽으로 연결된 경부선 줄기였다
자본은 곧 이윤추구를 극대화할 수 있는 곳에 집약되기 마련
교통망은 물자의 집약과 시간단축을 극대화하므로
경부고속도로는 곧 지역불균형을 낳게 된다
건축물에도 이런 경향이 반영된 듯 규모와 시설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던 호남선과 경부선 터미널이었다.
그런데 천정부지로 솟은 강남지가로 율산그룹이 재기에 성공했다
그들은 2000년 이곳에 백화점, 컨벤션센터, 대합실을 통합한
기존에 꿈꾸었던 대규모복합교통센터를 짓게 된다
이로써 경부선과 호남선터미널의 불균형은 역전된다
물론 호남 - 경부선터미널이 단절되었다는 기존 한계는
센트럴시티 이후에도 크게 해결되지 못했다
전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
호남선과 경부선의 거리는 그 건축적 차이로 인해
화합을 이뤄야할 터미널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성장의 위상을 세우려던 건축물과
백화점과 호텔을 끼고 세워진 건축물
같은 터미널이더라도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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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재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입니다
오 다음 기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