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영국. 6.25 전쟁 관련글마다 "영국이 이정도로 파병했었나?" 라는 반응이 종종 보여 영국의 6.25 전쟁 참전사에 관해 써봅니다.
<한국에서의 영국군 장병들 1>
영국은 6.25 전쟁 개전 3일만인 6월 28일 참전을 결정하고 7월1일 해군을 급파합니다. (미국에 이어 두번째 참전결정이자 한국 상륙)
참전인원은 총 56,000명 파병 이는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1,078명의 영국군 장병들이 한국에서 눈을 감앗으며 2,674명이 부상당하고 179명이 실종, 978명이 포로로 잡히는 큰 피해를 입습니다.
<한국에서의 영국군 장병들 2>
다른 유엔 참전국가들은 규모가 대대급이나 연대급이라 모두 미군 부대에 배속되어 미군의 지휘를 받으며 싸웟는데 영국군은 규모가 큰 만큼 독자적 지휘권을 얻어 호주,뉴질랜드,캐나다,남아공 영연방 국가들을 지휘하며 주한영연방군으로 활약했습니다.
<진흙탕에서 티 타임을 즐기는 영국군 장병들>
영국군은 주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하였습니다. 특히 아군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전투를 했는데 대표적인 전투가 고양 전투와 설마리 전투입니다.
고양 전투는 1951년 1월2일부터 1월3일까지 영국 육군 29여단 소속의 로얄 얼스터 대대가 벌인 전투로 157명의 얼스터 대대 장병들이 전사하고 20여명이 포로로 잡혓습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한 크롬웰 전차 13량도 모두 격파되어 살아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얼스터 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피난민들은 안전한 철수를 할수 있었습니다.
<38선을 돌파할 준비를 하는 호주군과 영국군>
설마리 전투 또한 국군과 유엔군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영국의 글로스터 대대가 고립방어전투를 펼친 전투입니다. 글로스터 대대는 600여명의 병력으로 중공군 2만5천여명의 공격을 3일간 방어해냅니다. 하지만 이 전투로 글로스터 대대의 D중대를 제외한 모든 대대원들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파주의 글로스터 추모 공원>
파주시에는 글로스터 대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공원이 조성되어있으며 글로스터 대대원들의 고향 글로스터 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이번 코로나 사태때 방역물품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주한영연방군은 전후에도 재건사업에 참여하며 한국에 주둔하다 1993년 남아있던 소수의 의장대원들까지 철수하며 주한영연방군의 한국 주둔사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