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한지 한달쯤 됐을 때였다.
한창 민간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군대의 물감을 지우던 시기였는데,
듬성듬성 자라난 머리카락 때문인지 어딜 가든 군인이냐고 물어보더라.
그날은 아는 동생 놈 만나서 초저녁까지 술먹다가 헤어졌었는데,
취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근처 편의점에서 컨디션 하나를 사 먹었음.
편의점을 나와서 사거리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가 옆에서 어리숙한 한국말로 말을 걸더라.
"져기효. 혹씨 구닌 이세효?"
취기 어린 내 눈깔로 어림잡아 봤을 때는 40대 초중반의 동남아 계열 아줌마였음.
혹시나 시발 그러겠지만, ㅆㄱㄴ, ㄱㄴ 이 지랄하는 새끼들 있을까 봐 몽타주 그렸다.
얼굴에 스킨로션은 거사하고 썬크림도 안 바르고 다니는지
피부 전체가 푸석한 진한 갈색빛을 띄더라.
그 와중에 머리랑 입술은 버건디로 깔 맞춤 돼 있었음.
와, 이게 유튜브로만 보던 '도를 아십니까' 구나 판단해서
'제가 바빠서요'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존나 뛰다시피 추노했는데,
도사 아줌마가 '저기효 잠깐만효' 성경 구절 반복하듯이 뒤를 바짝 쫓아왔음.
이대로 집으로 가면 좆될거 같아서 집 근처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시장 골목길 한가운데에 들어가고 나서 멈춰 서니까
도사 아줌마가 숨을 가파르게 내쉬면서 나한테 다가오더라.
"저기..효.. 됴망 가지 마세효.. 졔가 하고 십픈 먈이 있어효."
"무슨 말이요?.."
"최근에 큰 쟐묫을 하쎴죠? 얼귤에 근씸이 보여효."
나도 여기서 1절만 하고 도망갔어야 했는데,
순간 유튜브에서 도를 아십니까 엿 먹인 게 생각나서
되지도 않는 연기 재롱을 보였다.
"사실은.. 제가.. 사람을 다치게 했는데.."
도사 아줌마 눈이 휘둥그레 팽창하더니 내 말을 끊고 돼 묻더라.
"군대에서 댜치게 하쎴나효?"
속으로 존나 웃겨서 육성으로 터질뻔 한거 참았다.
"아니요.. 며칠 전에.."
"혹씨 크게 댜치게 하쎴나효?"
애꿏은 손톱까지 물어뜯으면서 열연을 보였음.
"하.. 그러려고 한건 아닌데.. 숨을 안 쉬더라구요.."
도사 아줌마 표정이 존나 심각하게 굳더니 말을 더듬더라.
"아...아, 진쨔에효?"
"지금 저희 집에 있는데, 아직 처리를 못해서요.."
도사 아줌마가 슬그머니 뒷걸음질하기 시작하더라.
입꼬리 승천 하려는 거 억지로 여물고 말을 이어나갔음.
"혹시.. 조금만 도와 주실수 있나요? 돈은 충분하게 드릴게요."
이때부터 도사 아줌마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음.
내가 조금만 도와 달라고 계속 부탁하니까
본인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는지
"괜찬아효.. 괜찬아요.."
말 끝을 흐리면서 추노하려고 하는거
도사 아줌마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뒤를 계속 따라가서
"저기요! 그쪽이 제 말 다 알아 들었으니까, 그냥 보낼수는 없잖아요."
반 협박하듯이 말하니까 존나 꽥꽥거리면서 전력으로 도망가더라.
가끔 친구들하고 술 먹을 때 술안주로 썰 풀어주면 반응이 좋아서 자주 재탕함.
제발 남의 등골 빨아서 돈 벌려고 하지말고, 정당하게 노동을 해서 벌자. 도사 십새기들아.